개발자 레이첼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006
저는 평소에 개발, 프로덕트, 여성 3가지 키워드로 대화를 자주해요. 대화를 통해서 많은 깨달음도 얻고 지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또 깨달음을 얻고 그랬어요. 문득,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질문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다른 분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으면 또 몰랐던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화려하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어떤 고민이든 어떤 질문이든 편하게 남겨주시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좋은 형태로 답을 드릴게요. 제 이야기가 답이 아닐 수 있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의미있을 것 같아요. 공유는 환영입니다!
수많은 고민과 질문이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뉴스레터 형태로 고민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요. 그렇게 공유한 저의 생각을 이곳에도 기록으로 남겨둘까 합니다.
✏️ 오늘의 질문: 여성/생존
실무에서 여성 개발자가 많이 없는 환경이 장점일까요, 단점일까요? 면접 시, 여성 개발자가 많이 없는 이유에 대해 질문받는데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 레이첼의 생각
얼마 전 동아제약 면접 성차별 이슈가 논란이었죠. 한 기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자리에서 성에 대한 차별이 면접 질문에 내포되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습니다. 그런 일을 감행한 회사가 여성을 위한 생리대 네고라니, 겉과 속이 다른 그 모습에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여성 개발자가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그리고 여성 개발자가 많지 않은 실무 환경은 장점인가 단점인가? 에 대한 제 생각을 담아보겠습니다.
여성 개발자가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우선 이런 질문은 대부분의 경우 남성 면접관으로부터 여성 면접자에게 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면접 시 성차별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분들은 ‘차별 의도가 없이 여성 개발자에게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묻는 것일 수 있지 않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공감 능력부터 키우셔야 원하시는 환경 개선을 달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면접관과 면접자라는 일종의 권력 관계가 형성된 자리에서, 남성이 던지는 약자인 여성에 대한 질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한 번 더 배제당하는 경험으로 무언의 압박을 당하는 쪽이 훨씬 많겠죠.
만약 면접 자리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제 대답은 이러할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하는 여성의 비율은 20% 안팎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무 환경에 존재하는 전체 여성 비율을 언급하신 것이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위 리더 자리에 오르는 여성 개발자의 비율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현실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 회사의 일원으로서 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각자의 이유와 간절함이 다르기에 이렇게 답하기 또한 어려운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못된 질문에 어떤 현답을 내놓아야 하는지 제 생각의 최선은 이것이라 또 아쉽네요.
이번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분이 직접 올리신 글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논리정연하며 현명하신 여성분이 면접에서 탈락하고, 사회적 이슈에 이따위 대응밖에 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의 규모 있는 제약회사입니다. 어느 누가 ‘그래서 여성을 위한 사회적 환경이 나아지고 있지 않냐’, ‘남성 역차별’ 따위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 개발자가 많지 않은 실무 환경은 장점인가 단점인가?
성비 불균형이 심한 업무 환경은 결코 장점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기업 채용 시 성별 할당제, 가산제와 같은 제도가 점차 채택되고 있다고 하지만 공무원 분야가 아닌 이상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의 화살도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부정할 수 없죠. 제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뉴스레터를 위해 수집한 질문에도 여전히 여성 경력단절에 대한 고민은 상당수 존재했습니다. 같은 배경을 갖고 있어도 채용과 업무 환경에서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는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 구조적 문제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 개발자가 많지 않은 실무에서 장점이 존재할 수 있을리가요. 저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희귀한 여성 개발자라서 받는 원치 않는 관심,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놓아도 공정한 평가 대신 받는 그저 신기한 시선, 업무와 상관없는 사생활에 대한 지적 등, 굳이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이 인고의 시간을 견뎌서 지금은 이러한 불균형과 차별에 대해 회사 밖에서도 안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마음과는 다르게 실제로 채용을 진행할 때 여성 지원자분들을 찾아볼 수 없어 속상함과 함께 어떻게 하면 여성 지원자분들을 더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고요.
이전 뉴스레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함께 연대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행동할 힘을 서로 나눠주세요. 남녀 성비의 차이가 거의 없는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마땅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작은 움직임이라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마무리 하며 (´▽`)
2021년 3월 14일에 작성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저자의 글을 기사에서 접했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차별은, 단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의 위계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 역시 일정한 성역할과 제한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여성 차별과 동등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남성의 경우 더 낮은 위치로 내려가는 것을 제한받는 반면 여성은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을 제한받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가부장제를 유지해왔고, 따라서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다.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조차도,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생소한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큰 노력이 필요하며, 여성 역시도 여성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정말 내가 맞는걸까?’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흔들리게 된다.』
얼마 전, 참 좋아하는 여성 개발자 선배가 한 회사의 첫 기술 이사로 선임되고, 또 다른 회사들이 여성 사외이사들을 선임하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진심을 다해 응원했고, 여성이 이사 자리에 오르는 일이 더는 진기한 일로 여겨지지 않고 한 능력 있는 개인의 성취로 받아들여지는 그 날이 오기를 동시에 기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