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 일과 삶 속에 존재하는 책

Mijeong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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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아하고 존경하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팟캐스트 여둘톡을 통해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라는 책을 접했다. 프로필만 보자면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최지은 작가님의 에세이 책이다. 최지은 작가님은 Meta의 APAC 핵심 멤버로 지내던 37살, 암 진단을 받고 앞으로 살날이 9개월 남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치료를 받으며 여전히 잘 살아있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듣고 이 책의 내용을 ‘일에 빠져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지내던 워커홀릭이 건강 위기를 계기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보다는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향으로 예상됐다면, 아마 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지은 작가님은 그렇게 암 치료를 받으며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일이 재밌고, 일보다 건강을 챙기라는 핀잔을 자주 듣는 나에게는 더 깊숙이 스며드는 공감대 혹은 깨달음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 기대는 명중, 작가님의 실체가 있는 유려한 구절들을 읽고 잠시 호흡하며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 호흡의 틈에서 일과 삶에 대해 어떤 생각들이 나에게 다녀갔는지 같이 적어본다.

계속 들고다녀서 얼룩덜룩해진 책 흐린눈 요망

p.112 오랜시간 만들어진 내 궤도의 관성을 뿌리치고, 새로운 궤도를 만들어가면 될 뿐이다. 계획했던 대로, 상상했던 대로, 염원했던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았다고, 궤도를 이탈했다고 절망하고 슬퍼할 이유도 없고 시간도 없다.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면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단순하다.

파워 J, 계획형인 나란 사람은 인생이 쉬지않고 버거운 중이다. 일과 삶은 늘 내 계획대로 흘러가거나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변수들에 대처하지 않으면 태생이 불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렇다. 아기를 낳고 일하는 엄마 3년 차인데 나는 왜 이리도 일과 삶의 균형이 힘들까, 새로운 조직을 이끌며 사람과 일을 넓혀가는 이 과정에 크고 작은 변수들은 왜 이렇게까지 폭풍처럼 찾아오는가. 이 버거움의 파동 속에서 내 중심을 잡아준 건 뚜렷한 해결책도,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도 뭣도 아니었다. ‘하.. (욕욕)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는 생각이었다.

최지은 작가님의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면 혹은 모르겠으면, 그냥 단순하게 앞으로 전진이라는 이 말만큼 나에게 현실적인 지침은 없다.

p.140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성실하고 일관적인 태도로 상대방에게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주는 것, 작은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 이 모든 게 직장 생활의 스킬이자 인생 스킬이다.

p.167 과정이 잘 설계되어 있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조직장으로서 내가 하는 고민은, 우리가 얼마나 함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이다. 이 부분이 만족스럽다면 결과는 자신 있다.

한때는 함께 일하는 사이에 감정, 개인사 등이 개입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또 그즈음의 나는 과정은 모르겠고 결과만 만들어 주의에 빠져있었다. 이 생각들은 리더 역할을 수년간 해오며 점점 무너졌다.

리더는 이끄는 조직의 결과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 (아 물론, 지시와 결과 확인만이 리더의 역할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현실은 다른 기회로 풀어보겠다). 내가 이끄는 조직이 계속 더 나은 결과를 만들게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기에, 누구보다 과정을 관찰하고 개선 가능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인 ‘사람’ 이 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 과정에 대한 관찰 없이는 리더는 이끄는 조직이 어떻게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어떤 성과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작가님이 말하는 우리가 얼마나 함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를 위해 과정을 잘 설계하고, 그 설계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p.185 어차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완전히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입을 좀 더 다물어야 하고 귀를 좀 더 열어야 한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에서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구멍이 생겼을 때, 회사 메신저 알림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다 어린 아기에게 집중하지 못했을 때, 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 후회와 걱정의 시간은 분명 현재의 시간보다 더 길었다.

길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니 지금은 마치 현재에 머무는 현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난 이 현상은 많은 부분 타고남의 영역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이제는 의식할 줄 알고 후회와 걱정에 매몰되는 빈도와 깊이가 완화될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빼곡하게 차 있는 업무와 미팅 일정의 범람 속에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동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정리되지 않은 일들로 머리가 꽉 차 있어도 퇴근 후 집 신발장에 발을 들여놓으며 아기를 보는 순간은 아기의 쫑알댐과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 업무와 미팅이 아주 조화롭게 계획되고, 퇴근과 동시에 일이 깔끔하게 끝날 그날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눈앞에 있는 지금에 집중하는 게 나에게는 해결책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올해 8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는 3번째 책이었다. 책을 읽은 이후로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는 말인데, 글을 쓸 여유가 생기면 이 책에 대해 꼭 쓰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삶에 어떤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을 할까, 유지하는 선택을 할까?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살아내고 있는 것들을 유지하는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삶에 있는 것들이 힘들지 않은 것들도 없지만, 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글로 풀어내고 싶었으나 생각 정리가 아직 어려웠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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