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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녀’라는 수식어가 나에게 남긴 것
이 글은 ‘이혼녀’라는 수식어가 스스로 그리 불편하지 않았던 제가, 필요 이상으로 불편해졌을 때 ‘여성으로서의 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적어내려간 글입니다. 결국 ‘이혼녀’라는 수식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된 계기가 된 셈이네요.
나는 약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접고 이혼한 이혼녀이다. 당연히 이혼 후 나에겐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존재가 이제는 아니게된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더이상 나의 결정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의견들을 억울하게 듣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있었다.
나는 이혼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느낀 크고 작은 좋은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불편함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다.
- 남성에게서 오는 메시지의 수가 급증했다. 나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갖고 있고 이 직업은 남녀성비의 불균형이 심하다. 이 말은 내가 남성을 여성보다 사회에서 더 많이 만난다라는 뜻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혼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면서 남성들이 보내는 메시지의 수는 눈에 띄게 급증했다. 지금까지 댓글 정도만 남겼던 일면식 한번 없던 남성들에게 내가 ‘안부를 가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존재’ 쯤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했다.
- 지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그들은 ‘혹시..’ 혹은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라는 말로 시작해서 ‘괜찮아 넌 잘 살 거야!’ 라는 요구하지도 않았던 응원의 말로 끝맺음을 한다. 이혼이라는 현실이 힘들지 않을 수 있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떻게 대부분의 지인이 유사한 패턴으로 말을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혼 여성과 이혼 남성에 대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현실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진짜 상처는 조심스러움을 가장한 조심스럽지 않은 그 질문임을 모르는가.
- 친척들의 위로에서 나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혼 후, 친척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 헤어지기 전 손을 꼭 잡고 ‘힘내고..’ 혹은 ‘술 너무 마시지 말고..’ 라는 낙오자를 전제로 한 위로를 받고 있자면 불편함이 온몸에 휘몰아친다. 나는 10년 넘게 술을 좋아해서 많이 마시는 사람이다. 이혼이 힘들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고 제발. 다행히, 우리 부모님과 동생은 (연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혼한 내 모습을 더 좋아해 준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혼한 내 모습이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좋아해 주는 거겠지.
어쩜 하나같이 내가 필요 이상으로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타인이었을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꽤 잘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 직업을 사랑하고,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금전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좋은 사람들이 꽤 많이 주변에 있으며, 오늘보다 내일은 더 좋아질 수 있음을 기대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잘살고 있는데도 남들은 나의 ‘이혼녀’라는 수식어를 마치 낙인처럼 생각하나보다. 만약 내가 남성이었다면 내가 겪은 일들을 내가 느끼는 만큼 경험했을까? 그들도 이성에게 대상화되고, 사회와 가족에게 낙오자가 되는 경험을 했을까?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와 직접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보니, 삶에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모습도, 젊은 여성 리더로서의 내 모습도, 심지어 매일 열심히 운동하는 내 모습조차도 나의 이혼의 이유였다.
나는 지금껏 느껴왔던 이 불편함을, 여성이 전제되었을 때 다른 평가를 받아야하는 현실의 불균형을 건강하게 바꾸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싶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회적 약자로써 여성이 이슈가 되고 이곳저곳에서 여성을 위한 크고 작은 운동이 벌어질 때, 나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지레 포기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성공한 여성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공감하자는 말을 할 때보다 사회적 강자인 남성들을 이길만큼 더 독하게 노력하라는 이기적인 말을 할 때 더 공감했다. 눈과 귀를 닫고 나만 노력하고 나만 독해지고 나만 보면 되는 일은 오히려 더 편한 선택이었다.
행동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가까이 두어서인지, 체감하는 사회적 불균형이 더 다양해져서인지 어쨌든 나는 이제 그 이기적인 멘트에 공감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에 더 공감하고 크고 작은 행동들을 실천하기로했다. 그 행동이 이렇게 일기를 가장한 글이 될 수도 있고, 깨어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북클럽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크고 작은 행동들을 통해 여성의 존재가 한 인간으로서 온전해지기를 기대해보고자 한다.
굳이 오랜만의 휴가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사실, 임은정 검사가 후배 검사 새끼한테서 ‘선배님 마늘 드시고 사람 되셔야죠’ 라는 말을 들었다는 글을 보고 빡침력이 상승해서 일수도, 10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옛 남자친구에게서 메시지와 계속되는 전화를 받아서 일수도, 뭐라도 쓰지 않으면 또 일을 하게될 것 같아서 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친절함을 강요받거나 뭐라도 하면 여자가 나댄다는 말을 듣는 현실을 이제는 무시할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북클럽에서 나눌 책을 고른다. 스스로 좋은 영향력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력을 건강한 방향으로 사용해보자. 그리고, 이혼은 절대 여성에게 실패가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아. 그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계기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