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리더십’ 및 ‘팀’에 대한 성찰
올해 1월 갑자기 임신 사실을 알았고, 출산과 육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계획보다 빠르게 복귀를 하게 되었고 ‘일’ 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풍성한 경험이 없는 한 해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의 타래는 일 년 내내 일에 몰입해서 경험이 넘치던 어떤 해 보다도 엉켜있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그 한정된 경험 안에서 아쉬운 점이 참 많았나 보다 싶어 짧게라도 글로 남기고 엉킨 타래를 풀어보고자 한다.
- 나의 리더십 경험은 스타트업 CTO, 개발 팀장 n번, 그리고 현재 여러 팀이 속해있는 실의 리더로 요약할 수 있다.
- 올해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조직(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 그 짧은 과정에서 아쉬움이 많았던 ‘리더십’ 에 대해, 그리고 ‘팀의 실행’ 에 대해 기록을 남긴다.
- 더 솔직히 말하면 ‘결론적으로 실패한 일’ 을 돌아보고, 행동했던 것의 기록이다.
- 결국, 나의 ‘리더십 확장’ 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었다 생각한다.
✍️ 리더십에 대하여
특정 경험을 통해 나의 리더십에서 부족했던 것, 그리고 더 상위 리더십에서 놓쳤던 것을 많이 곱씹어본 시간이었다. 실패라고 정의할 수 있는 아쉬운 경험을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있다.
환경을 정확히 이해했는가?
긴 업력으로 성장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 과 ‘사람’ 의 복잡도가 높다. 이미 다양한 배경으로 서비스와 조직의 규모가 커진 회사에서 ‘일’ 과 ‘사람’ 을 관리하는 것은 높은 차원의 확장된 리더십을 요구했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었다. 규모가 크다고 정의한 이유는 변경 범위가 넓었고, 운영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서비스 도메인 대부분에 크든 작든 관련이 있었으며, 레거시 시스템 특성상 기술적으로 강한 결합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기술, 시스템 관점의 면밀한 분석은 당연했다. 새로 구축하는 시스템의 설계 방향, 기존 시스템의 변경을 최소화하는 방향, 주어진 시간 안에 목적 달성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기술적 견고함의 정도 등. 다른 조직에서 가장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코드 및 시스템에 대해서도 먼저 분석하여 방향을 제시할 만큼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놓쳤던 것은 바로 ‘사람’ 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해야 하는 ‘다른 조직들’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프로젝트는 직/간접적으로 n개의 조직과 협업이 필요했으며, 이 말은 다른 조직의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 조직에서 이번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으니 당신 조직에서 협조가 필요합니다. 시스템은 분석해보니 이런 방향으로 변경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라고 말했을 때 단번에 “그러죠, 잘해봅시다!” 라고 말하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늘 바쁘고 이미 쌓아둔 일이 산더미인데 당신 지금 뭐라는 겁니까?” 라는 반응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프로젝트의 당위성, 프로젝트의 실행 방향에 대한 분석 이전에 주 실행 조직뿐만 아니라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직들을 ‘이해’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의 일과 상황, 어려움과 과제들을 먼저 이해하고 그에 맞게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하고 설득했다면 이 과정이 조금은 더 성숙했을 거라 믿는다. 일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직/간접적인 ‘모든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 은 확장된 리더십을 위해 나를 포함한 상위 리더십에게 필요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이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프로젝트는 가급적 일을 쪼개서 진행해왔다. 그리고 타 조직과의 협업을 위해 그들을 이해하는 일을 잘해왔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복잡도로 엮여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이러한 규모의 프로젝트는 나에게도 첫 경험이었다는 말이다. 꽤 아팠지만, 나의 리더십 확장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여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보지는 않았다. SNS를 떠돌다 한국 대 포르투갈 전에서 손흥민 선수와 황희찬 선수의 역전 골 장면을 우연히 보게됐다. 8명의 포르투갈 선수가 손흥민 선수를 에워쌓지만 그 틈으로 공을 패스할 수 있었던건 운이 좋아서였을까? 많은 경험과 훈련으로 그 상황마저 손흥민 선수에게는 충분히 이해한 환경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 장면을 보자마자 내 리더십의 부족했던 점이 환경의 이해구나 라고 깨달았으니.
🤝 팀에 대하여
유난히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던 해였다. 아쉬운 소리는 나 스스로를 향하기도 했고, 나보다 더 상위 리더십을 향하기도 했으며, 실 내의 팀장과 팀원들을 향하기도 했다. 특히, 팀과 소통했던 이야기는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두 가지 맥락이더라.
결정했다면, 어쨌든 실행하자!
나는 일을 대할 때 ‘왜?’ 에 대한 질문을 지겹게 던지는 사람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팀에게도 늘 강조했던 말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일에 개입된 모든 사람이 ‘왜?’ 에 대해 비슷한 이해 선상에 있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더라.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런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일을 만드는 과정, 진행하는 과정의 성숙함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 생각해보자. 개입된 사람과 조직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온전히 이해시키는 일 혹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만 하다가는 정작 진행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일을 언젠가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상위 리더십에서는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거 정말 중요한건지 계속 의구심이 든다?’ ‘ 그런데, 이 일을 하지 말자고 할 근거는 또 딱히 없다?’ 그럼 어쨌든 실행하자. 내가 그 일을 바꿀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면 실행에 집중하자. 실행을 해야, 그리고 끝을 봐야 피드백이란 것도 주고받을 수 있다. 특히 팀장과 시니어 역할을 기대하는 팀원에게 자주 전한 이야기다.
우선 끝을 보자, 잘하는 건 그다음에 생각하자!
같은 맥락이다. 새롭게 신설된 조직이라면,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 합을 맞춰본 경험이 없다면, 조직이 담당하는 도메인이 아직 낯설다면, 하나의 일을 ‘끝까지 함께 완수해보는 경험’은 필수다. ‘잘 해내는 것’ 은 그 다음에 고민해도 된다.
우선 하나의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경험을 한다면 우리 팀의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경험이 있어야 팀의 역량을 끌어내는 전략도 세울 수 있다. 그 전략은 앞으로 팀이 더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한 질문 속에서도 팀에게 짧은 주기로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계속 요구했던 건 이런 이유였다. 그 일의 결과가 좋으면 당연히 팀의 성과이고, 결과가 나쁘다면 결정한 리더십(나)이 책임지면 된다. 다행히, 팀은 끝까지 해내는 경험과 성취감을 가져갔고, 결과도 괜찮았으며, 팀의 역량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팀이 안전함을 느끼고 일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막 지난 기분이다.
“(친절한)금자씨 쓸 때 목표는 끝까지 쓰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끝까지 쓰는 건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게 더 잘할까를 고민하죠.” — 정서경 작가
아침 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팟캐스트 ‘여둘톡’ 에 정서경 작가님이 나왔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수많은 작품을 썼던 작가님도 끝까지 쓰기만 하는 것이 목표일 때가 있었다고 한다. 작품을 끝까지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니,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팀으로 일을 한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실패한 것’ 을 돌아보고 그에 대해 쓰는 일은 어렵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 썼다 지웠다, 너저분하게 글에 붙는 핑계들을 지워내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환경 탓, 다른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트위터에 이 글을 올렸을 때 단순히 실 구성원들에게 ‘좌절감에서 벗어나자’ ‘실패를 통해서 성장 요인을 찾자’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나 역시 실패를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일을 잘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계기로 삼을 거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 글이 그 마음을 표현한 결과일 수도.
불필요하게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계획대로 흘러간 것이 거의 없고, 내 의지로 내 인생을 제어할 수 없음을 알게 해준 존재(=아기)를 만났던 2022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