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레이첼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003

Mijeong (Rachel)
6 min readDec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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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에 개발, 프로덕트, 여성 3가지 키워드로 대화를 자주해요. 대화를 통해서 많은 깨달음도 얻고 지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또 깨달음을 얻고 그랬어요. 문득,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질문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다른 분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으면 또 몰랐던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화려하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어떤 고민이든 어떤 질문이든 편하게 남겨주시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좋은 형태로 답을 드릴게요. 제 이야기가 답이 아닐 수 있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의미있을 것 같아요. 공유는 환영입니다!

수많은 고민과 질문이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뉴스레터 형태로 고민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요. 그렇게 공유한 저의 생각을 이곳에도 기록으로 남겨둘까 합니다.

✏️ 오늘의 질문: 취업/미래

고등학생 신분으로 취업하려니 고민이 많습니다. 개발 실력도 부족한 것 같고, 이제는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도 확신이 없습니다. 점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도 많이 잃었어요. 무기력해지는 이 삶에 조언 부탁드립니다.

⭐️ 레이첼의 생각

우리는 우리 존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그래서 계속 채워나가려는 관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학위를 더 보유하는 것, 여러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 온라인상에서 학벌에 대한 글을 여전히,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글의 맥락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취업한 동료가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잘러 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해보지 않은 동료들은 그분에게 학벌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지속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 아래 우리는 각자의 보이지 않는 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 선을 높이기 위해 나 자신을 밀어붙이기도 하고, 그 선을 기준 삼아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기도 하죠.

오늘의 고민을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취업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고 있는 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취업하는 것

저는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제가 헤아릴 수 있는 고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을 남겨주신 분은 이른 시기에 개발자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에 이런 진로 고민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사실 경이로워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지, 그래서 어떤 진로를 선택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주변에는 일찍 돈을 버는 친구들이 많았고, 스스로 가난한 환경을 핑계 삼아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버는 무리에 속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만류로 등록금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컴퓨터 공학부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진학했습니다. ‘도대체 이 검은 화면에 하얀 글자는 뭐야?’ 이 상태로 반년 이상을 지속했으니 말 다 했죠. 저에 비하면 훨씬 이른 시기에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셨다는 점에서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진학한 것이 취업에 영향이 없었느냐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취업을 시도했던 시기보다는 학력에 대한 기준이 많이 유연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대학교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회사들은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질문하신 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사실 중요한 건 내 선택의 기준과 의지라는 것을요. 제 주위에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일찍 개발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또 멋지게 일을 해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 주위에 존경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우연한 기회로 적지 않은 분들이 대학교 진학 대신 개발자라는 직업을 일찍 선택하신 걸 알게 됐어요. 어쨌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학력에 대한 선 대신 가시적인 개개인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투명함’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멀었지만, 그 확산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선에 우리의 믿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합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고 있는 나

우리는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그 과정에 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심지어 과거의 나 자신과의 비교 또한 피할 수는 없겠죠. 저는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비교의 대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죠.

부끄러운 과거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신입사원 시절, 교육을 마치고 배정받은 팀으로 출근하던 시기였습니다. 개발이라는 업무 자체에 정성을 쏟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난 당연히 잘 해낼 거라는 자신감도 한껏 차 있는 상태였죠. 그 시절, 충만하던 제 의욕을 꺾었던 것은 부족한 제 경험도, 개발 실력도, 기대와 다른 업무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6개월 먼저 회사에 입사하고, 서울대를 졸업한 선배였습니다. 팀원분들은 그 선배의 행동 하나하나에 “역시 서울대” 라는 감탄사를 붙였습니다. 저나 혹은 다른 동료들이 그 선배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도 그저 수식어가 없는 존재 중 하나에 불과했죠. 그 영양가 없는 비교가 저에게 남긴 것은, 꽤 긴 시간을 질투와 낮은 자존감으로 버틴 것뿐이었습니다.

이제 최근의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가끔 그럴 때 있죠. 서비스에 이상한 현상이 아주 짧은 시간 지속되다가 다시 정상 패턴으로 돌아오는 경우. 다른 일도 많고 바쁘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동료 중 한 분은 데이터, 시스템 로그, 서비스 로그 등을 남김없이 살펴보며 찰나의 이상 현상의 원인을 찾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분과 저를 비교하는 부분은 서비스 안정성에 대한 집착과 원인을 파악해가는 노련한 과정입니다. 이 건강한 비교는 서비스를 바라보는 제 태도를 더 나아지게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과거 이력 혹은 학력은 알지도 못할뿐더러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순간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사로잡혀 필요 이상으로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히지 마시길 바랍니다. 걱정하던 미래에 실제로 내던져졌을 때, 무엇을 비교할 것인지 건강한 선택만 하신다면 생각보다 신나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리라 기대합니다.

마무리 하며 (´▽`)

2021년 2월 21일에 작성

트위터를 염탐하다가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흔히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지만, 실제론 금방 바뀌지 않을 뿐 바뀌며, 직업이나 지위 등이 바뀌면 더욱더 빠르게 바뀌는지라. 신입, 3~5년 차일 때는 엄청 무능, 찌질하던 사람이 창업하거나 승진하면서 엄청 유능한, 대인배가 되어있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도 많음. 과거 이미지로 판단하는 건 위험』

스스로를 환경에 매우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임이 주어지거나, 멋진 동료들이 함께한다거나, 만들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프로덕트를 만난다거나. 이 환경들은 자칫 느슨해 보이지만 긴밀하게도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반대로 누군가의 화려한 배경은 긴밀해 보이면서도 저를 변화시키는 일에는 매우 느슨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또 나 자신을 믿어주는 회사와 동료들을 만나고 그리고 주어지는 환경에 충실 합시다. 분명 누군가에게 긴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존재가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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