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 가 된 후 달라진 삶의 태도 — 당근 수습 통과 기념

Mijeong (Rachel)
5 min readJan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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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던 알았던 ‘엄마’ 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1년 뒤 2023년 9월,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아기를 만나고 첫 6개월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이후 6개월은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아기와 꼭 붙어있는 삶을 보냈다. 여전히 ‘일하는 엄마’ 로 ‘일’ 도 ‘엄마의 역할’ 도 이도저도 아닌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안고 새 회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수습 기간을 통과했다.

현 회사에 오기로 결정했던 핵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다.

  • 내가 지원했던 포지션은 공통 서비스 개발팀의 리더였다. 잘 할 수 있는 일이면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도전이 있다 생각했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은, 팀을 처음부터 구축하며 함께 성과를 내도록 성장시키는 것. 도전이라고 생각한 일은, 개발자 동료가 고객이 되어 그들의 생산성을 위한 서비스/도구를 제공하는 것. 지금까지 대고객을 위한 서비스 개발을 주로 해왔던 입장에서 꽤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을 명확히 하는 것’ 은 의식적 훈련을 통해 잘해왔다 판단해 감당할 수 있을 정도 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주 n회 재택 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을 때, 아기와 보내는 시간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찰싹 붙어있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은 포기해야겠지만, 아기에게 ‘엄마는 집에 없는 사람’ 이라는 인식을 주고싶지 않았다. 재택 근무를 하는 날에는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아기가 서재 방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점심밥을 먹는 시간에 수시로 아기를 안아주고 눈을 마주친다.
  • 실행력 좋은 동료들이 많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주변에서 워낙 좋은 분들 당근에 많이 간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나에게 현 회사의 포지션을 제안해 준 분들은 아웃사이더 님과 너굴 님이다. 두 분을 만나고 포지션에 관심이 생겼을 때, 또 만났던 분은 진우님이다. 남편이랑 당근 SRE 밋업을 유튜브로 함께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둘 다 ‘와 찐이다..’ 했던 발표가 ‘당근페이, 6개월 간의 인프라 구축 이야기’ 였고 그 발표의 주인공이 진우님이었다. 이렇게 현 회사를 소개하고 추천해주신 분들 덕분에 실행력 좋은 동료들이 많겠다는 기대감은 커졌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 외에도, 이전 경험과 기술 스택이 달라서 조금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흥미를 주는 요소가 됐다. 회사나 서비스 자체에 대한 고민도 안한 건 아니지만, 이번 이직의 기준은 조금 더 나의 내면과 현실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3개월이 지난 지금 자의든 타의든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은 있지만 다행히도 선택했을 당시의 기대감은 여전하다.

사실 그동안 수습 기간은 ‘일하는 자아’ 에 대해 가장 많이 사색하는 시기였다면, 이번은 ‘삶의 태도’ 에 많은 고민과 변화가 있었다.

  • 인생의 우선순위가 크~게 바뀌었다. 40년 가까이 살아오며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도, 내 의지만으로는 해결되는 것이 너무나 소소해 어려움을 안겨준 대상도 아기가 처음이었다. 일에 몰입을 넘어 매몰되다시피 살아온 삶의 관성을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일 때문에 아기와의 시간을 헛되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늘 다짐한다.
  • 물리적인 개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이제 한 살이 지난 아기와 함께 산다는 건 부모의 시간은 아기가 허락하는 만큼만 주어진다는 뜻이다. 분리수면을 못한 우리 부부는 교대로 아기와 함께 자고, 잠귀가 밝은 우리 아기는 새벽에도 자주 깨며 옆에 엄마나 아빠가 없으면 울기 때문에 아기를 재우고 육(아)퇴(근)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턱없이 부족해진 개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고심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 시간의 ‘양’ 보다 ‘질’ 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변동 가능성이 적은 개인 시간을 명확히했다. 나의 경우, 매일 새벽 2시간과 주말 오후 중 2시간 정도가 고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개인 시간이다. 주 18시간 정도면 크게 아쉬운 시간은 아니다. 다만, 이것저것 하기에는 이도저도 아닌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업무를 하며 아쉬웠던 부분을 학습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늘 활용하던 학습법이지만, 학습 직후 업무에 적용해볼 수 있을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주제로 더 제한하고 있다. 그 외, 독서나 지금처럼 글을 쓰는 시간으로도 활용한다.
  • 이 개인 시간을 유지하려면 주어진 업무 시간 내에 충분히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선순위와 위임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보는 건 부수적 효과이기도 하다. 아직 개인 시간의 꽤 많은 부분을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와 위임에 대한 고민이 팀이 더 일을 잘 하는 문화에 기여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개인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팀을 빌딩하며 새로운 서비스 제공이라는 작은 결과도 만들고, 개인과 회사가 가치를 주고받으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습 해제 선물로(?) 또 하나의 팀을 리드하게되며 2개의 팀이 각자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미션이 생겼다. 팀 동료들이 모두 자신과 회사가 가치를 주고받고 있다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일하는 엄마’ 로서의 내 삶을 많이 응원한다. ‘일’ 도 ‘엄마의 역할’ 도 완벽함을 추구하기 보다, 둘다 포기하지 않고도 균형있게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다.

유튜브 개발바닥 ‘결혼하면 개발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까?’ 에 남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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